그러니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은 무척 중요합니다. 사회운영의 기본 틀이 되는 것이지요. 하여 이 중요한 법을 만들거나 고치거나 폐지할 경우 미리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볼 시간을 갖자는 절차가 바로 ‘입법예고’인 셈입니다. 관심을 갖고 국회나 경기도의회 또는 화성시의회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입법예고’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금 고약한 것은 법률의 위계나 발의주체에 따라 입법예고 기간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입니다. 현재 입법예고 기간을 보면 같은 국가의 법률인데도 정부에서 발의할 경우 40일 이상, 국회의원이 발의할 경우는 10일 이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법률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지방정부에서는 조례이지요. 지방정부로 내려와보면 지방정부가 발의할 경우 20일 이상, 지방의원이 발의할 경우 5일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법률의 위계가 다르다 하여 조례가 더 하찮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도 있고 관련 상위법률 등과 충돌하지는 않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더 면밀한 판단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5일 이상’이란 규정이 무척 요식적인 행위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정부와 의회의 이런 입법예고 기간 차이가 종종 고약한 거래나 청부입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본인들이 발의하면 20일 이상이 소요되는데 지방의원이 발의하면 고작 5일 이상이면 되니, 마치 무슨 민원이라도 넣듯 의원을 통한 우회입법, 청부입법을 빈번하게 시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해당 조례에 영향을 받는 시민들, 시민사회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도 쉬워지겠지요.
그래서 전국의 시민단체들은 이미 작년부터 지방의원 발의 조례안 입법기간을 지방자치단체 발의 조례안과 같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국회에도 법률 개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미 자발적으로 조례개정을 통해 시민들의 판단과 숙고 기간을 보장한 곳들도 꽤 여러 곳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5일 이상’이라고 되어 있으니 지방정부 발의 기준에 맞게 ‘20일 이상’으로 해도 상위법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지요. 인천광역시, 대구광역시 달서구, 거제시, 횡성군 등은 입법예고 기간을 10일 이상으로 규정했고, 강릉시, 제천시, 거창군 같은 경우에는 20일 이상으로 정해놓았습니다.
우리 화성시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추어 시민단체들 중심으로 작년부터 ‘입법예고 조례 개정’을 논의하고 촉구하는 흐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화성미래혁신포럼에서는 꾸준한 논의와 심의를 거쳐 ‘주요 조례 개정안’이라 설정하고 얼마 전 화성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기획행정위 소속 거의 모든 의원들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다 곤란한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시의원들의 입장에서는 ‘5일 이상’이라는 본인들의 입법예고 기간이 ‘일종의 특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요.
구체적으로 오고간 내용들은 더욱 가관입니다. “입법예고기간이 5일이라 피해를 본 사례가 있는가?”, “재난지원금 같은 긴급한 사안의 경우 입법예고기간이 길면 제대로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입장에서 업무가 더 과중될 수도 있고 심지어 예산도 더 소요될 수 있다”는 식의 거부 의견들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예산이 더 소요될 수도 있다’는 제기는 그 근거를 다시 분명히 물어봐야겠으나, 앞에 나온 반대 이유들에는 정말 한숨만 나올 따름입니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위에 언급했던 강릉시, 제천시, 거창군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20일 이상’이 가능하다는 말일까요? 그 곳에도 다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꾸로 이 지역들에서 입법예고 기간을 조정하여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리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시민을 대변해야 할 시의원들이, 전혀 시민들의 입장에 서 있지 못한 행태가 무척 개탄스럽습니다. 시민들의 참여를 더 수월하게 하여 민주주의를 더 풍성하게 하자는 제안에 어떻게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는 못할망정, 제대로 된 검토와 논의도 없이 일언지하에 거부하겠다는 것입니까? 국회도 마찬가지지만 지방의회 역시 제대로 일을 못하면 우리 시민들만 고달파집니다. 결국 의원들이 끝까지 거부할 경우 시민들이 조례개정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민발의’ 밖에 없습니다. 100만 도시 화성시의 경우 19세 이상 주민 총수의 150분의 1, 그러니까 약 5,700명 정도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화성시의회 의원님들의 재고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입법예고 #입법예고기간 #입법예고연장 #법안예고 #입법과정 #법률개정 #정책변경 #국회입법 #국민의견수렴 #법률안 #법안심사 #법률개정안 #입법활동 #국민참여 #의견제출 #정책입안 #행정절차 #법안발의 #정책소통 #국민권익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투데이경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